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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9-02 17:39
2016.3.1(화) 1592년 임진왜란의 시작과 결말을 생각해보다.
 글쓴이 : 관리자 (183.♡.122.250)
조회 : 213  
1 부 전쟁의 시작

1592년 5월23일 부산으로 히데요시의 제1군이 고니시 유끼나가의 지휘아래 7천명이 몰려 들면서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2군 가또기요마사 3군 구로다 나가마사군이 몰려오면서 조선은 처참한 전쟁터가 되었다.그당시 조선 500만 인구중 병사 20만명 민간인들 80만명이 죽었고 규슈와 간사이 지방의 병사들 18만명이 명분도 없는 전쟁에서 죽어갔다.

그 출병지 나고야 - 명호옥^중부지방의 대도시 나고야는 명고옥 - 규슈지방사가현 가라쓰지방이다. 후꾸오까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걸리는 이곳에 본토와 규슈지역 병사들이 모여 쓰시마해협을 거쳐 부산으로 몰려든 것이다.

2부 토요토미 히데요시

7년간의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는 1598년말에 끝나게 된다.
일본 병사들 18만명은 살아서 현해탄을 건너지 못한다.살아 돌아간 서민 병사들도 불구가 되거나 최하층으로 전락하고 그 가족들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하지만 장군들은 거의 살아서 돌아가서 그 지위를 유지하며 부유한 삶을 누리게 된다.

전국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오다노부나가는 오와리지방 지금의중부지방 나고야를 중심으로 세를 늘려가서 일본통일의 길을 앞두고 있었다.그런 그가 측근이었던 아께찌 미쓰히데에게 교토 본능사-혼노지에서 배반을 당해 사랑하는 여인과 법당에서 자결하여 한줌의 재가 되었다.

노부나가의 최하위급 부하였던 히데요시는 그 추운 겨울날 주인의 신발을품어 충성심을 인정받아 하는 일마다 성공시켜 최고 측근이 되어 있었다. 미쓰히데의 반란 소식을 듣고 바로 거병하여 진압하고 일본을 통일시킬수 있었다.

히데요시가 대륙으로의 진출을 결심하고 조선으로의 출병을 결정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나 수많은 인명만살상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그에게는 사랑하는 요도기미와 어린아들 히데요리가 있었다.5대 다이묘들을 모아놓고 충성서약을 받는다.그의 명령으로 120만명이 죽어갔는데 어린아들 걱정하는 그가 읇은시는 인생 꿈속의 꿈이로다 아 나니와-지금의 오사카-의 영광도 이슬처럼 사라져가는구나^이다.

조선에서 왕 잘못만난 민중들의 억울한 죽음은 누가 책임지고 그 넔은 그누가 위로해준다는 말인가?무책임하고 자질없던 선조와 살인마 히데요시 그리고 그의 선봉장들은 하늘의 벌을 받게된다.

3부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서쪽의 지배자 토요토미의 죽음으로일본은 두파로 나누어진다.히데요시의 가신파들이 그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주군으로 받들고 동쪽은 도꾸가와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다.지금도 서쪽의 한신과 중부의주니찌가 동쪽의 중심인 요미우리와와 야구를 할때면 전의를 불태운다.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일이 전쟁이 끝나고 1년반 지난 1600년에일어난다.

오사카에서 도꾜로 가다보면 큰 평원과 산이 나온다.세끼가하라 그리고그곳에서의 전투! 서쪽 히데요시파와 동쪽 이에야스의 전군이 두패로나뉘어 진을 치고 싸움을 목전에두고 있었다.이기면 전부를 갖고 지면 장군 자신은 참살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남자들도 죽임을 당하고 부인이나 딸들은 죽음이나 노비가 되어야한다.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뇌의순간 그중 고니시 유끼나가, 가또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는 임진왜란중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그 지위가 더 확고해졌다.그들의 전투 하루전은 일생일대 최대의 고민에 빠져 잠을 못이루었을 것이다.부하들 18만명조선인 100만명을 죽이고 돌아왔던 그들 아닌가?

가장 머리가 복잡한게 구로다 나가마사였을 것이다.고니시끼는 처음부터 히데요리를 주군으로 받들었고 가또는 상황을 최대한 보면서 아주 적은 수의병사들만 서쪽편에 보냈다.그러나 구로다는 그의 아버지 구로다 간뻬이가 히데요시의 전략가였고 그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아 규슈의 정치 행정 중심지를 지배하고 있었다.그는 결국 가또와 같은 선택을 한다.

4부 하늘은 용서하지 않았다.

날은 밝았다.서편이 군세면에서 우위에 있었고 초반전투에서 동군을 몰아 붙이기 시작했다.피가 튀고 머리가 잘려나가는 전투는 그대로 진행되었다.지면 엄청난 결과가 기다린다.하늘은 서쪽편인것 같았다.이에야스는 상황을 파악하고 옷을 벗어 갓부꾸-활복준비를 하고 에도에 있는 가족들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순간 전령이 달려온 것이다.

서쪽편에 가담했던 장군들이 이에야스가 사전에 약속한 것을 믿고 도중에 말머리를 돌려 자기편을 살육하기 시작했던것이다. 그리고 반나절도 안되어 승패는 결정되었다.서군 장군들은 활복을하고 가족들은 죽어갔다.

조선이 그렇게 포로로 잡고 싶던 고니시유끼나가는 자살을 하지 않았다.천주교신자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그는 교또로 끌려와 일반 병사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치욕을 맛본다.그리고는 교또 강변에서 가장 사이가 안좋았고 라이벌이었던 가또 기요마사에 의해 목이 잘려졌다.

이에야스측에서는 처음부터 가또를 믿지 않았다 서군과 동군의 협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를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그는 영지인 구마모토로 목이 붙은채 돌아갈 수가 있었으나 매일 밤 자객이 올까봐 떨어야 했다.조선의 호랑이를씨를 말리고 조선민중들의 목을 베고 코와 귀를 잘라 히데요시에게 보냈던 그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한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이에야스측에서죽였다고 본다.

구로다 나가마사는 영지를 대폭 축소당하고 전국을 돌면서 에도막부에게충성을 다할 것을 호소하면서 불안한삶을 살다가 죽어간다.

1603년 지금의 도꾜에 에도막부가 세워진다.

5부 앞으로 해야할 일들

신깐센을 타고가다 젊은 일본인 청년과 이야기를 해본다. 누구를 존경하냐고? 아주 우려스럽게도 아주 많은 수가 아무 것도 없이 출세해서 정상에선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거론한다.역사에는 관심이 없다.

1599년을 지나 다시 1910년에는 35년 식민지배를 받는다.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오늘 3.1절 과거의 분노보다는 지금과 미래를 준비해야한다.우리공동체나 국가도 힘을 가져야한다.역사를 잊는 것은 미래의 위험을 불러온다.

1592년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이곳나고야에서 출병하는 왜군들을 상상해 보고 눈앞에 펼쳐진 현해탄을 보면서 여러가지 감정과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