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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1-26 20:38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을 읽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124.♡.0.82)
조회 : 3,077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을 읽고...



지금은 별세하신(2006년 8월 9일) 오주석님의 강의를 책으로 읽는
기회가 생겼다. 솔직히 조선시대의 그림들은 보아도 잘 모르거니와 근 현대 미술보다 관심이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보면서도 그 그림의 맛을 전혀 음미 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가운데 정말 오아시스 같은 참맛의 책 한권으로 우리 옛날 그림에 이렇게 많은 뜻이 있는지를 몰랐었던 것에 미안한 감정마져 올라옴을 느낀다.

우리의 옛 그림은 들으려고 하면 들리고 보려고하면 그린이의 감정마져 보이는 것이 서양 그림과 다른 점이란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훌륭하고 소중한 우리 그림에대해 전혀 귀와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것이다.
이책에서는 특히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학교때 미술 교과서에서도 보아왔듯이 김홍도의 그림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그의 그림에 정말 놀라운 사실이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책을 보고 나서의 일이었다.
정말 내가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던 그림을 책의 설명을 듣고나니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 보아지면서도 아~!하고 감탄마져 흘러나오기도 했다.
고미술의 경우는 볼기회가 생길때마다 그냥 항상 잠깐 보고마는 것이 다였었다. 더 이상은 볼 이유도 없고 단원김홍도의 <씨름> 의경우도 그냥, 우리 민속 놀이인 씨름이네..라는 것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그런 그림이었다. 그것도 단원 김홍도 선생이 유명해서 본것이지, 씨름 그 자체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던 것에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중,
우리의 한국 그림은 서양화와는 달리 그림이 세로로 긴 그림이 많다는 것.
서양화는 가로로 긴 그림이 많은것에 비해 우리의 옛 그림은 거의가
세로로 긴 그림이 많은 탓에 그림을 보는 눈도 서양화와는 달라야 하는점.
그림의 묘미를 완벽히 알려면 시선을 그림의 오른쪽 위부터 아래쪽의 왼쪽으로 훝고 내려와야만 그림의 참맛을 알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설명을 듣고 나서 그림을 그런식으로 보았더니 그림이 너무나 매끄럽게 보아지는 것이다.
만약 그 반대로 그림을 본다면 그림의 어느부분은 생략되어지거나 보이지
않게 되어지는 경우, 또는 그림이 매끄럽게 보아지지 않고 맥이 끊어지게 된다.
(첨부파일 첫번째 그림: 김 홍도의 주상관매도)


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김홍도의 유명한 그림 <씨름>은 (첨부파일 그림 위에서 두번째) 당시 사람들의 삶이나 사회상이 한국적 해학과 정취가 곁들여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담고자 하는 핵심을 집약하려는 듯 그의 풍속화는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꽉 짜인 원형 구도를 이루며 간략한 필선의 묘미가 잘 나타나 있다.
주제는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 생활을 꾸밈없이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제에 어울리게 거친 듯하면서도 투박한 선을 쓰고 있다.
〈씨름〉은 두 사람이 맞붙어 씨름을 하고, 구경꾼들이 빙 둘러서 구경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용을 쓰며 들어 올리는 사람과, 한 발이들려 곧 넘어지려는 사람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구경꾼도 두 패로 갈라져 있는지 각각의 표정이 재미있고 누구 편인지 금방 알 수 있을 듯하다.
곧 승부가 날 것 같은 흥미진진한 순간인데도 엿판을 맨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 않고 장사에 열중이다.
그림에서 보여지는 중간부분의 이 떠꺼머리 어린엿장수도 그냥 끼워넣은
것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그린것임을 알았다.
먼 산 바라보고 있듯이 이렇게 시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한 것은 그림에
바람이드나들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만약 여기에 엿장수대신에 심판이
있었다면 그 사람들은 열심히 씨름꾼들을 바라보고 있었을테고, 그렇게 되면
인물들이 모두 작품 중앙을 향하고 있어서, 구도가 너무 求心的이고 답답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 그래서 고의적으로 빼버리고 엿장수의 모습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구경꾼들의 數도 위가 무겁도록 사람의 數를 아래쪽보다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위가 무겁고 아래쪽이 가볍도록 가분수처럼해서 그림의 재미를 더한 것이다.
이렇게 설명을 곁들이니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은 물론 단순한 그림도 단원의 생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화가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200년전
김홍도라는 화가의 면면과 비교해 보면서 오늘날 정말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하겠는가 다시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은 화가뿐아니라 감상자들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책 저자의 바람데로 미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미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미술관에서도 그림을 감상할때 좋아하는 그림앞에서는 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가도 살며시 알게 된 점이다.
어떤그림을 보면 자신의 어린추억을 되새기고, 어떤그림은 막연히 좋아서 감상해 젖는 그림도 있으며 자기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감상할수 있는 것이
미술이 주는 고마움이다.
그런 고마움을 느끼고자 심심풀이삼아 나도 그림 한점을 그려본 적이있다.
처음으로 캠퍼스에 그려본 처녀작 치고는, 스스로도 만족했고,
수풀이 우거진 나무를 그렸는데 우선 내가 그렸지만 보면 볼수록 자연가득한 수목에 쌓여있는 기분이 느껴지곤해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도통 고미술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로서는 단원의 그림과 신윤복님의 그림을통해 보면서 우리 옛 조상들의 해학과 그 때 당시의 정서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본 것은 큰 체험이자 경험이었다.

글쓴이: 이윤정